대학교 4학년, 한창 취업을 준비할 때가 생각난다. 몇 번의 면접에서 쓴 맛을 보면서 수 많은 지원자들 사이에서 면접관들이 한번이라도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했었다. 결국 짧은 시간이지만 평가자들이 나의 이야기를 그냥 듣는게 아닌 공감을 하게 만드는것이 관건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내 이야기를 최대한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로 만들어 전달했다. 이렇게 하니 이후 면접 합격률이 확실히 올라가는 것을 경험했다.
(면접준비하면서 읽었던 책. 커버 색이 바뀌었네)
면접은 스토리텔링이다 (컬러판)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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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무려 500페이지가 책 속에서 저자는 다양한 사례와 이론들을 통해 이야기-스토리-내러티브를 정의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개인과 사회에 작용하는지 긴 호흡으로 풀어냈다. 학문적으로 쓰여진 부분들이 많아 흐린눈으로 넘긴 부분들도 있지만, 꽤나 흥미롭게 느껴져서 몇 번이나 인터넷 창을 드나들며 검색하며 읽게되는 파트도 있었다. 이 책은, 시간을 투자해서 열심히 읽으면 읽을 수록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게 분명!
저자는 영웅의 서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 흐름에는 필연적으로 열 두가지의 단계가 나타난다고 한다. [익숙한 세상-모험으로의 부름-거부-멘토-문턱-시험, 동지와 적-가장 깊숙한 동굴로 들어가기-영혼의 어두운 밤-칼을 움켜쥐다-귀로-부활-영웅의 금의환향] 영리하게도 책의 챕터도 영웅의 서사와 동일한 12가지 챕터로 구성해두었다.
(넋두리지만, 워낙 방대한 책이라 다시 보고 싶은 부분들은 북마크-하이라이트 기능을 통해 남겨두었는데.. 서평을 쓰려고 다시 열어보니 다 날아갔다.. ebook ㅂㄷㅂㄷ)
모호함 속에서 우리를 구원할 '이야기'
우리는 어쩌면 스토리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떠한 상황이 '모호한' 상태로 남겨져 있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떻게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자 하고 이유를 만들어내 애매하고 답답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한다. 나라는 사람도 일명 '물음표 살인마'가 될 때가 있는데 원인을 알고 싶어하고 누군가 그럴싸한 이야기로 공백을 채워주길 원한다. 그래서 스토리가 더 힘을 가지게 되는 모양인데, 한편으로는 이것이 위험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정된 정보안에서 상황을 정의하고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여기에 씌워진 프레임이란 얼마나 단편적일까 라는 생각을 해볼때,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은 쉼 없이 왜곡되어 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스토리는 이런 인간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과정에서 힘을 얻게 된다는데 동의하게 되면서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우려감이 들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스토리가 덮여지는 순간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구분할 수는 없는 노릇. 수 없이 많은 매체들이 우리에게 스토리를 전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사고해야 하고 다각도로 상황을 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어느덧 스며드는 내러티브
요즘 시대는 스토리를 생성하고 내러티브를 각인시키는 방식이 더 치밀하면서도 자연스러워졌다. 나만 해도 궁금한 점이 생기면 손쉽게 유투브로 영상 검색을 하는데, 한번 보게 된 영상은 수 없이 많은 유사 영상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단순한 궁금증은 관심사로 변하게 되고 익숙해지면서 특정 메시지가 머리속에 각인되는데 - 사실 유투브에 의해 정교하게 짜여진 알고리즘이라는 점에서 - 어느덧,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뇌리에 들어온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스토리의 힘은 상당하다. 한 순간에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또 나락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오늘 퇴근 시간을 15분 앞두고 광고팀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매장에 붙여둘 포스터를 새롭게 제작하게 되었는데 오늘 바로 발주가 나가야 해서 빠르게 심의를 진행해 줄 수 있냐는 요청이었다. '퇴근 직전에 이게 무슨일?' 이라며 상기된 채로 전화를 받았는데 알고보니 광고모델인 이강인선수 이슈로 포스터를 급히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날아라슛돌이 프로그램 시절부터 귀여운 이미지로 인식된 국민 남동생 같은 선수가 최근 불거진 문제로 국민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딱 들어맞는 사례는 아닐 수 있지만, 함께 커온 꼬마아이가 멋진 축구선수로 성장한 스토리가 이강인 선수를 만들었다면, 축구팀 선배에게 하극상을 부리고 팀 전력에 해가 되었다는 스토리는 이 선수에 대한 여론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놓았다. 시간을 다투고 포스터를 떼어내야 할 만큼.
책에서 인용한 여러 사례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이해해가며 읽었다면, 더더 즐거움을 느꼈을 어렵지만 재미있는 책인데. 게으름 피우느라 시간을 더 쓰지 못해서 아쉬움이 든다. 그 아쉬움은 내일 토론 시간에 멤버들의 의견을 들으며 풍성하게 채워보도록 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