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폭풍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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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으로 읽었던 터라 책의 두께가 주는 위압감은 모른 채 읽기를 시작했다. 꽤나 오랜 장을 넘겨온 것 같았는데, 아직 이만큼이나 남았다고? (전자책은 하단에 200/1000, 20% 이렇게 현 위치가 표기됨) 정말 호흡이 길고 길었던 '폭풍의 언덕'.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까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단연 히스클리프라고 할 수 있겠다. 언쇼씨가 데려온 검은 얼굴의 아이는 처음 독자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왠지 이런 아이는 풀이 죽어있을 것이고 내성적이며 착한 심성일 것이다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러나 틈틈히 보여지는 히스클리프의 성미는 보통이 아니었다. 언쇼씨가 자신을 아낀다는 점을 활용하여 힌들리에게 복수하는 등.. 당하고는 못살고, 타고나기를 소유욕이 강한 아이로 그려졌다. 동거동락했던 캐서린과는 자연스럽게 감정을 키워가는 사이가 되었고, 조건이 좋은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사실에 복수심을 키워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는 말을 몸소 보여준다. 캐서린이 결혼한 린튼 가의 딸 이사벨라를 유혹해 그녀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어버리고 캐서린과 에드가 사이에서 태어난 캐서린(2세)을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키고 린튼가의 재산을 소유해버린다. 사촌간 결혼이라는 점도 현 시점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지만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의 히스클리프는 악마가 따로 없었다. 요즘 말로는 싸이코패스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과연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깊어지고 극으로 달해야 이런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가질 수 없다면 망가뜨리자 정도의 그릇된 생각, 과도한 미련, 오기나 광기 같은 마음일까?

 

'히스클리프에 대한 독자로서의 분노'

전 캐릭터를 통틀어서 가장 불쌍했던 인물은 히스클리프의 유혹에 넘어가 결혼 시점부터 인생을 시들시들하게 살아가야 했던 이사벨라. 히스클리프, 본인의 사랑은 숭고하고 절대적인 것이면서 어떻게 다른이에게는 복수심을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해먹었는지! 무고한 그녀가 안쓰러워서 히스크리프라는 인물을 얼마나 욕했는지 모른다. 결국 책의 엔딩에서 히스클리프는 '영혼의 행복이 몸을 갉아먹는 상태'가 되는데,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복수에 허무감을 느껴지고 해탈한 미친사람처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죽게 된다. 헤어튼과 캐서린의 즐거운 모습을 보고 복수가 부질없었음을 깨닫거나 또는 헤어튼의 모습에서 거울치료하듯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도 부끄러움/자괴감 등의 감정이 들었을지는 몰라도 진정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모습이 없었다는 점에서 히스클리프는 태생이 악랄한 놈이었다고 본다.  

 

'한편으로 드는 생각'

감정의 온도가 뜨겁다 못해 타오르고, 심지어 그 불씨로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자 했던 히스클리프의 사랑을 '사랑' 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냐만은. '쿨함'이 트렌드인 요즘같은 시대에 그렇게 누군가에게 뜨겁게 몰입할 수 있다는 점(뜨거운 수준까지만)이 그립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전 즐겨보는 연애 프로그램 '나는솔로' 에서 연애에 서툰 출연자 한분이 상대방에게 무한 애정 공격을 하는 바람에 한 동안 '이 정도면 무서워진다. 집착이 도를 넘었다. 이정도면 스토커다' 시끌시끌했다. 호감이라는 감정을 키워가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나 상황이 종료되었음에도 놓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들었고, 동시에 어떤 측면에서는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체면치레 하지 않고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대단한 용기라는 생각을 했다. (절대 그 행동을 미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 끝으로

책을 반 정도 읽었던 시점인가. 넷플릭스에 영화를 검색해 보았고, 마침 좋아하는 배우인 카야스코 델라리오가 주연을 맡았길래 반가운 마음에 시청을 했다. 평점이 5점대라는 점이 불안불안..했지만 책의 느낌을 영화로는 어떻게 살렸을 지 궁금하기도 했다. (일단 영화는 어둡고 지루한 편..) 폭풍의 언덕의 시각적 배경과 인물의 특징을 잘 표현했으나 전반적으로 책 만큼 감정선을 섬세하게 다루지는 못했다고 본다. 또한, 책은 화자가 청자를 두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라면 영화는 그런 설정이 없었고 이야기도 캐서린의 죽음에서 끝이난다. 이후 영화를 보고 책으로 넘어온 시점에서는 '아니 캐서린이 죽고나서도 무슨 일이 더 일어나는거지?' 궁금해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이번책은 유독 치열했지만, 세계고전문학 중에서도 손꼽는 방대한 책을 완독해서 뿌듯함이 몰려온다!!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행동때문에 답답하고 화가나서 몇번이나 한숨을 쉬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몰입하고 감정을 써가며 읽었기에 이번 독서모임에서 할 말이 많겠구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