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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봄에 나는 없었다 by 애거사 크리스티

dayashley 2024. 6. 24. 22:02

 

 

 

조앤의 삶은 마치, 이상적인 삶의 규격을 그려놓고 그 안에 자신을 억지로 욱여넣는 모습이었다. 일단 그 규격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내용물이 구겨지든 부서지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모습은 '교양있는 말투,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외모,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를 남편으로 둔 모두가 부러워할 중년의 여인' 이었다. 그 안이 어떨지는 몰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그럴싸하고 근사한 모양이 갖춰졌다. 그리고 조앤은 자기확신이 강한 타입이라 그렇게 만들어진 삶이 정답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 모양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 삶에 대한 이상한 신호가 보일 때면, 흐린눈 하고 모른척하거나 결국은 자기 생각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위안했다.

 

남편 로드니가 변호사의 삶을 그만두고 싶어할 때도 그녀는 한 명이라도 현명해야 한다며 자기가 그 역할을 자처, 남편이 업종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한다. 혹시 로드니가 불행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고, 로드니의 마음상태는 들여다 볼 겨를이 없다. 

 

곳곳의 문장들이 그런 조앤의 내면을 보여준다.

 

 

"로드니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 같았다"

"사랑하는 로드니, 차창 안의 그녀를 올려다보며 서있을 때, 햇볕이 그의 얼굴에 쏟아져서 눈가의 잔주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피곤해 보이는 눈이었다. 깊은 슬픔에 젖은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진짜 슬픈건 아냐. 로드니는 그냥 그렇게 생겼을 뿐이야. 슬픈 눈을 가진 동물도 있잖아)."

 


 

그러던 조앤은 딸의 병문안을 다녀오는 길에 폭우로 사막에 갇히게 되고, 일정기간동안 기차역에서 단절된 생활을 하게 된다. 평소 생산적인 활동 없이 멍- 때리는 시간을 죄악스럽게 생각하는 그녀였지만 남아도는 시간을 채우려다보니 그간 스쳐갔던 일들을 하나 둘씩 끄집어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 라는 자각, 자신의 삶과 내면을 성찰하는 경험을 하게된다. 

 

조앤에게는 자녀가 있는 어머니이기도 했는데 자녀들의 성장과정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았다. 고고한 기준만 들이대는 '불통'의 어머니가 되었고 자녀들과의 관계는 건강하지 못했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참된 진실보다는 유쾌하고 편안한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는 편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그래야 자신이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몰랐다.


 

조앤은 바바라에게 애정이 없었다. 이해하려는 마음도 없었다.

조앤은 딸의 취향이나 요구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아이에게 좋을만한 일을 자기 흥에 겨워 이기적으로 결정해버렸다.

 

 

몇년 전 화제가 되었던 TV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열정 가득한 (지독한) 어머니들을 보는 듯도 했다.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규격 속에 꾸역꾸역 스스로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을 밀어넣는 모습이 딱.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삶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조앤을 통해 우리는 지나친 자기확신이 얼마나 위험하며,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고 단정지으려는 태도가 또 그 삶을 얼마나 외롭고 피폐하게 만드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자각한 조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변화한 조앤이 되리라, 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종용하지 않는 새로운 조앤이 되겠다 다짐한다. 그런데 가장 무서우면서도 현실적인 모먼트는 바로 여기있다. 집에 돌아온 조앤은, 결국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우리가 조앤의 삶을 비난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우월감을 느끼고 강박적으로 살아가는 조앤의 모습은 우리와 많이 닮아있다. 더하고 덜할 뿐이지 [나]만 해도 조앤을 보며 거울치료 하듯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외부의 시선을 신경쓰면서 괴로워하다가, '알게뭐야, 이제는 내 의지대로 살겠다' 다짐해보지만 익숙한 상황 속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모습까지도 ...

작가는 조앤을 통해 이제 그만 껍데기가 아닌 내면을 들여다 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조앤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 또한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그렇기에 단 하나의 가치에 매몰되거나 속단하지 말 것, 주변인물의 생각을 들어볼 것, 그리고 진심으로 이해해보려 할 것. 또 다짐해본다.

좋아하는 개그맨 유세윤님이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아 그럴수도 있겠당' 이라는 문구를 달아놓았는데, 그걸 보고 얼마나 마음이 평온해졌던지. 지금 조앤 그리고 우리에게 유용한 글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