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이 절절한 슬픔이나 먹먹함이 아닌, 해학적이고도 덤덤한 문체로 쓰였다. 주인공은 평생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에 갇혀 살면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다.
책 속의 아버지는 평등한 세상이 올거라는 믿음으로 사회주의자의 삶을 택했다. 그러나 혁명가로서의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왔다. 생판 모르는 남의 어려움까지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며, 가족의 부나 안위는 우선수위가 아니었기에 딸에게는 그저 답답하고 바보같은 아버지였다. 그러나 딸은 장례를 치루는 3일간의 시간동안 아버지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깊고 따뜻한 마음, 사람에 대한 진심과 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알던 아버지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아버지에게 화해의 손길을 건내게 된다.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무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224쪽)
이 문구를 보고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빨치산도 혁명가도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그 어떤 이념적 전제를 씌우지 않았다. 사실 나만 잘하면, 원하는 모습으로 내 삶을 살아가기엔 충분하다. 그러나 나는 감사함이나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늘 부모님에게 바라기만 했다. 과연 부모님에게 원하는 나는 어떤 딸일까를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문구를 보는 순간 부끄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작가의 표현 속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는 사실이 뼈아파 소리내 울었다'는 말이 아주 깊숙히 절절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각자의 시선으로 누군가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에게' 보여진 모습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 같은 것이 생긴다. 존경하는 마음이 짙다가도, 몇 가지 행동이 내 예상을 벗어나면 그 마음이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그저 천개의 얼굴 중 하나를 본 것일 뿐일텐데. 가깝고 막역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잘 모르기 마련이며, 속단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우리는 단편적인 모습들을 조각조각 모아 그 사람에 대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가는 것이기에.